안성시의회 최호섭 운영위원장
‘문화도시 안성’을 외치는 시정 구호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구호의 실체인 문화관광재단 설립 절차를 들여다보면, 시민으로서 불편한 의문부터 앞선다. “이 방식 그대로, 정말 괜찮은가?”.
올해 상반기 안성시는 용역을 통해 문화관광재단 설립에 대한 사전타당성 조사를 마쳤고, 현재는 경기연구원에 본타당성 검토를 의뢰한 상태다. 행정절차는 12월 완료, 출범 시점은 2026년으로 예정돼 있다. 이미 일정은 정해졌고, 방향은 정해졌다. 정작 빠진 것은 시민이다.
보고서에는 안성시의 문화 인프라와 시설이 꼼꼼히 정리돼 있고, 전국 재단 사례 비교와 조직안, 인력 계획도 상세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이 없다. 이 재단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지금 이 방식으로 추진하는지에 대한 시민적 설득과 공감의 과정이다.
실제로 설문조사 424부와 FGI 참여자 30여 명은, 행정과 가까운 협조자 중심의 의견 수렴이었다. 지역 예술단체, 청년 예술인, 생활문화 주체들의 참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공청회도, 시민토론회도, 공식적인 간담회도 없이 보고와 검토, 수정만 거쳐 ‘설립’이라는 결과로 향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이미 지난 3월 문화예술 공모사업에서 드러난 문제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소속 예술인은 출연료 대상에서 배제하고, 외부 초청 예술인만 예산 지원을 받는 기형적 구조가 행정 편의주의를 그대로 보여줬다. 단체 소속 예술인이 출연료를 받으려면 단체를 탈퇴해야 했던 모순된 정책. 그로 인해 공동체는 분열되고, 예술생태계는 위축됐다.
그 문제에 대한 어떠한 제도적 보완도 없이, 더 큰 제도인 문화재단으로 곧장 넘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반드시 되짚어야 한다.
시민의 참여 없는 문화재단이 어떻게 시민의 문화를 만들 수 있는가.
타당성 보고서는 30개 이상의 축제, 시설, 인력, 프로그램을 재단에 이관하고자 한다. 공공성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문화재단이 ‘문화행정통합센터’가 될 우려를 낳는다. 민간 거버넌스를 구축하기보다는, 시설관리와 사업추진의 기계적 집행조직으로 기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많은 기초지자체의 사례가 경고하고 있다. 무리한 통합, 정치적 인사 개입, 문화예술단체 배제, 이벤트 중심 단기성과로 흘러간 문화재단의 실패 사례는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심지어 지역 콘텐츠는 사라지고, 행정과 예술의 단절만 남았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문화재단은 단지 ‘출범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와 만들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가 본질이다. 시민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면, 시민의 삶과 목소리로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 안성시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2026년이라는 출범 일정에 갇혀 절차를 생략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시민들과의 ‘듣기부터 시작하는 설계’에 나서야 한다. 재단이 또 하나의 하청조직이 될 것인가, 시민 중심의 문화플랫폼이 될 것인가. 그 갈림길은 지금 이 순간, 행정의 태도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