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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충절과 충신을 기리다 '충의공 한온 충신 정문, 이대원 장군 묘, 홍학사 비각, 평택 농성'
  • 임강유 기자
  • 등록 2025-11-08 15:31:03
  • 수정 2025-11-08 16: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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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아트그라운드 편집부는 익숙하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지역 평택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뜻깊은 여정을 다녀왔습니다. 평택 땅 곳곳에 잠들어 있는 위대한 선조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번 특집 기사에서는 을묘왜변의 영웅 충의공 한온 장군의 충신 정문, 임진왜란 발발 이전 왜적과의 전투에서 빛나는 공을 세운 이대원 장군의 묘 및 신도비, 그리고 병자호란의 비극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굳은 절개를 지킨 삼학사 홍익한 선생의 비각과 평택 농성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초월한 그들의 희생과 충절이 담긴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이들 문화유산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닙니다. 이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고 의를 실천했던 우리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마주한 비석과 봉분, 비각은 텍스트로만 접하던 역사를 오감으로 느끼게 하며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했습니다.

이번 문화재 탐방 기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서도 평택이라는 공간에 새겨진 찬란하고 때로는 아픔 서린 역사를 재발견하고, 우리 문화유산의 진정한 가치와 선조들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발걸음이 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지면을 통해 전해지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평택시 향토유적 제3호 충의공 한온 충신 정문 전경. 임강유 기자

평택시 향토유적 제3호, 충의공 한온 충신 정문 전경. 임강유 기자

평택, 충절의 상징 '한온 충신 정문' – 을묘왜변 영웅의 정신 기려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금암리 594번지에 위치한 '충의공 한온 충신 정문'이 지역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 정문은 조선 중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한온 장군'의 충절(충의를지키는지조)을 기리는 상징적인 유적으로, 현재 평택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실제로 '충의공 한온 충신 정문'은 지난 1986년 3월 5일에 평택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됐으며, 유형문화유적 분류에 속하는 이 정문은, 조선 명종 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다.


한온 장군의 숭고한 충절, 을묘왜변의 기록


정문의 주인공인 '한온 장군'은 조선 명종 10년(1555년)에 발생한 '을묘왜변' 당시 전라도 장흥부사로서 왜구와 맞서 싸운 영웅이다. 그는 달량포 해전에서 침략해 온 왜적에 용감히 맞섰으나, 안타깝게도 장렬한 전사로 순국했다. 그의 순직 이후 133년이 지난 1688년, 백성들은 그의 충절을 기려 충렬사를 건립하며 그의 정신을 추모했다 . 또한 숙종 22년(1696년)에는 '충의(忠義)'라는 시호를 받고 충신 정문이 내려졌으며, 병조판서로 추증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현재적 의미와 보존 가치


한온 장군의 충신 정문은 단순한 기념비를 넘어, 우리 후손들에게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일깨워주는 교육의 장이자 역사적 공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정문 중앙에는 충절을 상징하는 붉은 홍살이 조성돼 있어, 방문객들에게 숙연함을 더해준다. 이러한 유산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것은 평택시의 중요한 과제이며, 앞으로도 평택시가 지역사회와 함께 한온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경기도기념물, 이대원장군 묘 및 신도비 전경. 임강유 기자

평택, 임진왜란 앞선 무인의 기상…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에 자리한 '이대원 장군 묘 및 신도비'가 조선 중기 무신 이대원의 숭고한 정신을 후세에 전하며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유적은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역사적 배경과 현재 현황


이대원 장군(李大源, 1556~1587)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선조 16년(1583)에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을 거쳐 전라도 녹도 만호라는 종4품 무관직을 수행했다. 그의 묘와 신도비는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으며, 현재 그의 사당인 확충사와 함께 위치해 있다.


묘역과 신도비의 특징


이대원 장군의 묘역에는 총 3기의 봉분이 있는데, 가운데에 장군의 묘가 있고 좌우에는 부인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묘역 아래쪽에는 장군의 생애와 공적을 기록한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이 신도비는 장군이 병조참판으로 추증된 지 11년 후인 1699년(숙종 25)에 건립됐다. 규모는 총 높이 325㎝, 비 높이 217㎝, 너비 87㎝, 두께 39㎝에 달한다.


묘소 입구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으며,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에 신도비가 있고 그 위쪽에는 장군의 동상과 12평 규모의 사당인 '확충사'가 함께 있어 방문객들이 장군의 충절을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조성돼 있다.


문화재적 가치와 계승


'이대원 장군 묘 및 신도비'는 조선 중기 무신의 삶과 나라를 지키기 위한 희생정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자 교육의 장이다. 경기도 기념물로서 이 유적은 후손들에게 선열들의 호국 정신을 일깨우고, 지역 사회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평택시는 이대원 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유적 보존과 활용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호. 홍학사 비각 전경. 임강유 기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호. 홍학사 비각 전경. 임강유 기자

평택, 역사 속 비극적 영웅 '홍익한'의 정신이 깃든 문화재 보존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본정리에 자리한 '평택 홍학사 비각'이 조선 시대 충신의 정신을 현대에 전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 여전히 조명받고 있다. 이 비각은 병자호란 당시 삼학사 중 한 명인 홍익한 선생의 비를 보호하는 건물로, 현재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문화재 지정 현황 및 이전 역사


정식 명칭 '평택 홍학사 비각'은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됐다. 본정리 322번지에 위치한 이 비각은 처음에는 1964년 평택시 팽성읍 본정리의 삼거리 부근에 건립됐으나, 이후 1982년 홍익한 선생의 묘소 앞으로 이전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비각 자체는 4면이 모두 홍살(붉은 창살)로 둘러싸여 내부가 개방된 형태로, 비석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병자호란의 아픔 속 척화파, 홍익한 선생의 굳건함


'평택 홍학사 비각'은 조선 인조 시대 병자호란(1636년)의 비극적 역사와 맞닿아 있다. 비각이 기리는 인물은 홍익한 선생(1586~1637)으로, 그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했던 '척화파(斥和派)'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오달제, 윤집과 함께 '삼학사'로 불리며 청나라에 끌려가서도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굳은 절개를 지키다 무참히 순절한 비운의 충신이다.


역사적 의미와 교육적 가치


이 비각은 "의(義)를 기리고 칭찬한다"는 뜻의 '포의지사(褒義旌社)'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홍익한 선생의 고매한 정신과 충절을 후세에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평택 홍학사 비각은 지역 주민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역사 교육의 장으로서 조선 시대의 아픈 역사와 함께 선조들의 굳건한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앞으로도 이 비각은 홍익한 선생의 충의 정신을 기리며 평택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존돼 후대에도 길이 길이 남겨져야 할 것이다. 


경기도 기념물, 평택 농성 전경. 임강유 기자

평택, 평야 지대 위 작지만 굳건한 토성의 비밀… 경기도 기념물로 보존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 위치한 '농성(農城)'은 평택 지역의 유구한 역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해발 24m의 낮은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흙을 쌓아 만든 이 토성은, 그 이름처럼 평야 지대의 지형적 특성을 활용한 독특한 방어 시설로서 현재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고대부터 이어진 전략적 요충지, 농성


농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전해지고 있으며, 또한 신라 말 중국에서 건너온 임팔급이 생활 근거지로 쌓았다는 전설도 함께 전해진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는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축조됐다는 기록도 있어, 시대 별로 다양한 위협에 대비하는 방어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평택의 넓은 평야 지대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구릉 위에 자리 잡고 있어, 과거 주변을 조망하고 적의 침입을 감시하기에 유리한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심 속 역사 학습장, 접근성도 뛰어나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한 농성은 도심과 가까워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자가용 이용은 물론, 평택역에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갈 수 있어 시민들이나 방문객들이 부담 없이 역사를 탐방하고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흙으로 쌓아 올린 토성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조들의 건축 기술과 그 지혜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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