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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 기획자라는 이름의 유령들
  • 임강유 기자
  • 등록 2025-07-15 1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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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평택시문화재단 생활문화팀장

최근 엄청난 흥행을 이끈 ‘론 뮤익’의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막을 내렸다. 94일 동안 약 52만 명이 전시장을 찾았고, 미술관 홈페이지의 신규 회원 가입자 수는 평소보다 4.5배 늘었다. 말 그대로 "사람을 끌어모은 전시"였다.


그런데 나는, 다른 방향에서 질문을 시작하게 된다. 이 전시는, 누가 기획했을까?. 거대한 인체 조각 뒤편에는 또 다른 ‘설계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작품을 섭외하고, 전시 동선을 짜고, 벽면 조도를 수십 번 조정하며 '뮤익의 세계'를 공간에 입힌 사람들. 그들의 이름은 왜 거의 드러나지 않을까?.


작품은 늘 작가의 것으로 남는다. 하지만 전시는, 작가와 공간과 기획이 만들어 낸 총합이다. 그리고 그 중 ‘기획’은 언제나 가장 조용한 자리에 머무른다.


문화예술계에서 기획자는 필연적으로 그림자 같은 존재다. 성과가 좋으면 앞에 나선 이들의 덕이고, 성과가 나쁘면 기획자의 실수로 귀결된다. 칭찬은 작가나 주최 측에게로 가고, 책임은 실무자에게로 돌아오는 구조. 특히 공공예술, 지역 문화기획, 비영리 축제 등에서는 그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나는 문화재단에서 20년 가까이 공연과 축제 등을 기획해 왔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순간들을 설계했다는 자부심도 있다. 그러나 내 이름이 기록된 경우는 손에 꼽힌다. 성공한 기획일수록 기획자나 실무자의 존재는 ‘뒷담’이나 ‘누락’의 방식으로만 언급된다. 언제나 보이지 않게 움직여야 한다는 무언의 규칙이, 우리 안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기획자 스스로에게도 내면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기획을 드러내기를 주저하고, 무대 뒤편에 있는 것에 익숙해지며, 기록 대신 반복되는 기획서 속에서 자아를 소진해 간다.


론 뮤익의 전시를 보며 나는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다. 위대한 전시에는 위대한 기획이 있다. 그것은 단지 '행정'이나 '운영'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이다. 무형의 것들을 연결하고 조율하며, 새로운 감각을 설계하는 창의적 노동이다. 우리는 이제 ‘기획’을 노동으로만이 아니라 ‘창작’의 일부로 바라보아야 한다.


기획자는 유령이 아니다. 이름 없는 기획자들이 있었기에, 수많은 전시가, 축제가, 예술이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나와 내 동료도 그중 하나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자리를 지키며, 다음 일을 차분히 이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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